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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2023년 12월 19일] PERI 비상근연구위원 (김대일 / 노동)

[김대일 칼럼] 저출산? 문제는 학교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역대 최저라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 반등이 예상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하락 추세가 반전되는 것도 아니고 세계 최저 출산율의 불명예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론에는 계속 저출산 문제가 보도되지만 그 추세가 반전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사실상 거의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된 데 있어서 그간 정부가 초점 잃은 정책으로 세금만 퍼부어 온 책임도 부인하기는 힘들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주로 출산 장려금, 아동수당 지급 등 돈으로 출산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왔다. 이런 장려금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실상 효과는 별로 없었다. 소득수준별로 자녀 수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통계(지난해 11월 23일자 본 칼럼에서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수당을 얼마 지급한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달 초 미국 학회에 갔다가 자녀가 6명이라는 한 여성 경제학 교수를 만났다. 우리 저출산 문제를 들어서 알고 있다는 그녀에게 워킹맘으로 다둥이 육아가 가능한 비결을 물었더니 그녀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대도시가 아니라 물가가 싼 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교가 참 좋기 때문에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답이었다. 학교가 참 좋다? 그녀의 설명은 이랬다. 보육시설과 유치원은 원래 늦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고 초등학교·중학교에서도 방과후 학교가 잘 운영돼 부모가 남들과 같이 퇴근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태권도·피아노·보습학원으로 돌리지 않으면 초등학생 돌봄이 해결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며 참 부러웠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이유는 선생님들과 학부모 모두가 어린 학생들의 인성과 지성을 잘 키워나가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데 이견이 없고 학교는 그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선생님들과 학부모가 실제 합심해 노력하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것이라 믿고 맡길 수 있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적성에 맞춰 커리큘럼을 짜고 학생들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썽꾸러기 학생도 있고 열성이 과도한 학부모도 있으며 이따금 자질이 부족한 선생님도 있지만 어떤 문제든 “어린 학생을 잘 키우고 지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모두의 공감대 안에서 해결책이 모색된다고 한다. 선생님들과 학부모의 정례 모임(PTA)은 자녀와 학생을 위한 토론의 장이고 이 토론의 장은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도 참석할 수 있도록 오후 7시 이후에 열린다. 우리는 오후 2시인데.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한 듯 설명하는 그녀가 부러울 뿐이었다.

최근 일본이 세 자녀를 출산하면 모든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우리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사교육 탓만 하며 손을 놓아 버린 공교육, 걸핏하면 학교로 쳐들어가는 학부모, 방과후에는 학원으로 뺑뺑이 돌아야 하는 학생들, 이 열악한 현실은 외면한 채 등록금 면제라는 행정 편의적 발상만 들이밀면 진짜 출산율이 반전될 수 있을까.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몰아세우면서 한편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교권 침해라며 징계를 남발하면, 학교가 선생님·학부모·학생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 우리 자녀들이 건전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로 자라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까.

교육 당국은 이제 편리한 유체 이탈 화법은 그만하고 현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들이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대형 장애물은 초등학교라는 벽이다. 이른 오후에 귀가하는 어린 자녀를 두고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은 학교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학교에 보내기만 해도 될까. 학교에서 잘 배울까. 혹여 장난치다가 징계받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애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학부모 위원을 해야 하나. 어머니들을 이런 걱정거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애를 더 낳으라고 돈을 퍼줄 것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애들부터 잘 키우려고 노력해 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출산율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2023년 12월 19일

<김대일, PERI 비상근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