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3년 2월 9일] PERI 비상근연구위원 (손양훈 / 에너지·환경)
[동아시론/손양훈]‘난방비 폭탄’ 예고됐던 에너지 쇼크다
난방비 폭탄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겨울의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논란은 매우 뜨겁다. 1월분 고지서가 나오면 난방비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정치적 책임 공방도 뜨겁다.
현재 국내 가정 난방 연료는 대부분 액화천연가스(LNG)를 쓴다. LNG는 당연히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온다. 그런데 가스를 사오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다소 복잡하다.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구조를 간략하게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입 방식은 크게 장기 계약과 현물 구입으로 나뉜다. 장기 계약은 길게 20년 전후로 생산국과 계약을 맺고 구입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유가에 연동하지만 구입 가격은 계약마다 다르다. 장기 계약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나름 장점이 있다. 바로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가격 변화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80% 정도를 장기 계약으로 사는데 현재 13개의 계약을 생산국들과 맺고 있다. 나머지 20% 정도는 가격 변동성이 높은 현물시장에서 필요에 따라 눈치껏 보충해 나간다. 우리 같은 수입국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황금 비율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는 이 황금 비율이 다 깨져 버렸다. 현물시장 가스 구입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것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에 주로 샀다. 제대로 바가지를 쓰게 된 것이다. 가격이 폭등할 때는 현물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인데 지키지 못했다. 한사코 피하고 싶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작년 LNG 수입액은 500억 달러를 넘었다. 그 전 해에 비해 두 배로, 몇 해 전에 비해서는 3배 가까이 금액이 뛴 것이다. 결국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추진과 졸속 에너지 전환으로 혼란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실제 폐로한 것은 고리와 월성1호기 등 2기이지만 ‘전원믹스’라는 점에서는 최악의 실패였다. 새로 건설하려 했던 신한울 3·4호기는 시작도 하지 못하게 했고, 공사하고 있던 신고리 5·6호기는 시작을 지연시키고, 심지어는 다 지은 원전인 신한울 1·2호기는 가동도 못 하게 막았다. 원래 계획대로 되었으면 이 가운데 5기는 작년까지 대부분 건설을 완료했을 것이다.
한데 재생에너지는 햇빛이 없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시간에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유일한 방법은 천연가스 발전소를 밤낮으로 가동하는 것밖에 없었다. 준비되어 있던 장기 계약으로는 어림도 없고, 안타깝게도 현물시장에서 초고가의 가스를 대량으로 사올 수밖에 없었다. 오롯이 평균 도입 단가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조용히 미수금으로 쌓이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난방비 폭탄의 형태로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이다. 5년 전부터 이미 예고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난방비 폭탄의 예후를 심각하게 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 번째는 그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누적된 미수금이 10조 원 가까이 된다. 상당 기간 동안 난방비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현재 급락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갚아야 하는 엉뚱한 외상값이 쌓여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기 계약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천연가스 장기 계약은 대부분 지난 정부보다 훨씬 이전에 맺은 것이다. 지난 정부는 탄소 중립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장기 계약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중국이 주도하며 장기 계약 시장을 싹쓸이해 가는 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국제 시장의 변동에 그대로 노출되게 되었고, 상당 기간 동안 에너지 위기 대응 능력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전 세계가 에너지 쇼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각국은 소비자들이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가격을 올리고 처절한 수요 관리에 나선 실정이다. 우리는 요금 인상을 미루다가 최근에야 에너지 쇼크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절감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높아질 때는 소비를 줄이고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에 투자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은 또 무엇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이다.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공급망의 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장기 계약 여부 등 세부 수급 계획을 촘촘히 짜고 이를 제대로 추진해야 지금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2월 9일
<손양훈, PERI 비상근 연구위원>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