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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2023년 11월 16일] PERI 비상근연구위원 (유일호 / 재정)

[유일호의 경제산책] 정부의 경제적 역할과 그 한계

 

토머스 홉스는 1651년 출간된 그의 명저 ‘리바이어던’에서 사람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권리 일부를 절대자, 즉 국가에 (자발적으로) 양도하며 국가는 그에 걸맞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로크, 몽테스키외 등이 확립한 사회계약설의 시작이 홉스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홉스는 국가를 절대적인 존재로 보고 그의 수장인 절대군주를 옹호한 사람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홉스가 살던 시절은 왕당파와 의회파,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신교, 국교가 복잡하게 얽힌 내전 시대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권력의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그는 의회파, 왕당파 양측으로부터 다 공격을 받았는데 중요한 것은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양도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 즉 국민을 위해 그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가지는 경제적 역할에 대한 중요한 시사를 준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국민들은 그를 위해 경제적 권리를 정부에 양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세는 개인의 재산권 일부를 국가에 양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리의 양도는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다시 말해 정부의 시장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시장개입은 필요 없다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야경국가론을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자들도 있는 반면, 과거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와 같이 국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양자 모두 국가가 국민을 위해 맡아야 하는 ‘이상적’인 경제적 역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방법론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양극단의 주장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은 잘 아는 바와 같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표현을 정부의 시장개입은 쓸모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지만 정부개입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무시하고 정책 당국자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게 되면 그 정책은 실패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몇 년 전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인 실례가 될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많은 경우 정부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특정 사안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정부지원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될 수도 있는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예산도 그와 같은 예가 될 것이다.

R&D란 그 속성상 성공이 완벽히 보장될 수 없기 때문에 대규모 기술개발의 경우 민간에서 그 위험성을 안고 투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정부의 역할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결과보다 지원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 사전심사 같은 것을 엄격히 하지만 그럼에도 관성적 지원 같은 낭비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아울러 지원에 반드시 수반되는 규제는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비용이 되는 것이다. 이와 흡사한 것이 ‘복지의존증’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이는 복지지출의 수혜자들이 이에 의존하고 자활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말이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지출 등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정부의 의무이지만, 이러한 일의 발생은 그 지출 충당을 위해 세금을 내는 납세자나 수혜자 양쪽 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한계 설정에 있어 항상 통용되는 정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각각의 경우 많은 토론, 의견수렴 등 신중한 접근을 한다면 그 한계에 대한 타당한 결론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점이다.

 

2023년 11월 16일

<유일호, PERI 비상근 연구위원>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