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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2023년 10월 10일] PERI 비상근연구위원 (김대일 / 노동)

[김대일 칼럼] 공공통계 조작, 국민 기만 행위다

 

얼마 전 미국 폭스 방송사가 부정선거 관련 가짜 뉴스를 방송했다가 엄청난 손해배상을 하게 된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짜 뉴스가 그렇게 낯설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오랫동안 일상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거짓말도 탄로 날 때까지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던가. 당장 득표와 지지율을 위해서는 아무 막말이라도 일단 질러보고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져도 솜방망이 처벌뿐인 정치 풍토에서 가짜 뉴스가 대량 유포돼온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면책특권까지 거머쥔 국회의원들의 ‘아니며 말고’식 막말 대잔치도 익숙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국민들도 이제는 정치권 선동에 진위부터 먼저 따져보는 센스가 생겼고 다행히 단순한 가짜 뉴스에는 별로 휘둘리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가짜 뉴스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짜 뉴스는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단순한 괴담 수준을 넘어 억지 논리와 가짜 통계로 그럴듯하게 포장까지 되고 있으며 소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업고 유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학계에서는 당연히 반론을 제기하지만 정치판의 가짜 뉴스 전문가는 학문적 논쟁은 회피하는 대신 억지 이론을 만들어내고 통계를 입맛대로 짜맞춰 가짜 뉴스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렇게 지능적으로 완성된 가짜 뉴스는 일반인이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짜 위험하다. 이런 가짜 뉴스들이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지만 아직 경각심은 충분히 높지 않아 우려된다.

경제나 교육정책처럼 온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의 경우 지능적 가짜 뉴스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사교육을 줄인다고 도입된 쉬운 수학능력시험 이후 사교육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었고 영화 한 편에서 시작한 원자력 재앙론은 태양광 설비의 환경 파괴와 한국전력공사의 천문학적 적자라는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안겼다. 수많은 저임금 근로자와 알바생의 일자리를 앗아간 소득 주도 성장론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임금만 높이면 소비가 늘어나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데 그렇다면 세상에 이렇게 쉬운 성장을 못 할 나라가 어디 있을까. 이 외에도 국가정책을 왜곡시킨 지능적 가짜 뉴스 사례는 넘친다. 그런데 그 공통점은 피해가 모두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언론·학계·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짜 뉴스를 최대한 경계하고 퇴치해야만 한다.

전 정부에서 한국부동산원에 집값 통계를 조작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통계청도 분배 통계를 조작했다는 감사 결과가 보도됐다. 심히 충격적이다. 사회 혼란을 유발하고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가짜 뉴스를 최대한 막아야 할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가 오히려 통계 조작에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로 시작한 정책의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덮으려 했다는 것인데 공공 통계는 국민을 위한 정책 설계에 쓰이는 핵심적인 기초 자료인 만큼 통계 조작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한 것으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라 할 수 있다.

9월 30일 자 뉴욕타임스에는 하버드대가 조작된 통계로 논문을 출간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영대 교수에게 학계에서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릴 것이라는 뉴스가 실렸다. 폭스 방송사의 사건뿐 아니라 하버드대 사례에서도 미국 사회가 조작된 통계와 이를 이용한 가짜 뉴스를 얼마나 위험한 반사회적 행위로 인식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학계도 이럴진대 심각한 반국가적 행위인 공공 통계 조작이라면 당연히 엄정한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확인하고 그 결과에 상응하는 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왠지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폭스 방송사나 하버드대에 견줄 만한 엄중한 처분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그간 정치권과 정부의 가짜 뉴스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까닭일까.

 

2023년 10월 10일

<김대일, PERI 비상근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